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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년 4개월'이 던진 숙제…지진재해 시스템 "기본부터"

올해 한반도 규모 2.0 이상 지진 76회…행정안전부 "행동요령 숙지" 당부

추민선 기자 | cms@newsprime.co.kr | 2022.12.12 09:38:27
[프라임경제] 지난 10월 말 규모 4.1의 충북 괴산군 지진 등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지진이 잇따르면서 행정안전부가 지진행동요령을 또 다시 안내했다. 

11일 행안부에 따르면,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부터 2021년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총 2024회, 올해는 지난해 70회 보다 많은 76회나 발생했다. 진앙 분포도 다양하다. 특정 지역에 몰리지 않고,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간 발생한 지진을 살펴보면, 규모 2.0 이상 3.0 미만의 지진이 88.5%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규모 3.0 이상 4.0 미만은 10.1%, 규모 4.0 이상도 1.4%나 발생했다. 지역별로는 2016년 9월 규모 5.8의 경주지진,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발생한 경북이 461회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았고, 북한(151회) 지역 지진을 제외하면 경북 다음으로는 전남(81회), 충남(78회), 제주(66회) 등이 뒤를 잇는다. 

경주와 포항 지진 이후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상식이 자리 잡으면서, 정부는 2018년 1월 '지진·화산 재해대책법'을 강화했다. 법령 강화가 이어졌고, 이에 따라 모든 건축물의 구조요소 및 비구조요소에 대한 내진보강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부‧지방자치단체 핵심시설, 데이터 보호가 중요한 기업 등이 '면진 시스템'을 (형식적이 아닌)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기업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전산장치 보호 필요성도 덩달아 강화됐다.   

데이터실이 있는 건물에서 발생한 단순 화재로 한 포털사이트 기업이 한 때 마비되면서 벌어진 해프닝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전산시스템이 일순간 타격을 입으면서 정부와 개인 간, 그리고 경제적 소통마저 일순간 멈추는 듯 했다. 

화재 피해와 비교하기 어려운, 강력한 지진은 국가 데이터센터 및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데이터 손실은 즉각 개인 및 국가 전체 상당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   

이런 가운데 '면진장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업 간 분쟁에 최근 정부가 내린 경고 조치가 눈길을 끈다.   
 
면진장치는 지면과 장비를 분리시켜 각 구조물이 지진파의 전달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 전산랙과 정보 데이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장치를 생산‧설치하는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업계 1위를 자부하는 A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는 B기업을 '부적합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라고 지속적으로 허위주장 한 것에 대해 B기업이 발끈,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일이 있었다. 

고발장은 2020년 7월에 접수됐고, 이에 대한 판단은 2022년 11월에 나왔다. A사가 잘못했다는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2년 4개월이 걸렸다. 

공정위는 절차에 따라 결론을 낸 것이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이 기간 A사의 '면진 시스템 스펙에 대한 허위기재'를 바탕으로 이곳저곳에 깔린 면진장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공정위(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에 따르면, A사는 B사의 제품(면진테이블)과 A사가 판매하는 제품을 비교하는 선정사유서를 작성해 A사 제품에 대한 과장허위의 내용을 기재했고, B사에 대해서는 '부적합'이라는 용어를 써 B사의 제품이 부적합한 제품이라는 인상을 줘 A사의 제품 보다 B사의 제품이 불량하거나 불리한 것으로 구매자를 오인시키는 방법으로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했다. 

공정위는 A사의 위법성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1항 제3호에 위반한다'고 명시했고, 조사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 조사결과가 적법하고 사실이라면 A사가 설치한 면진장치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려야 하며, 정부 당국은 '경고' 조치 이후의 후속으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큰 숙제다.      

면진장치는 그 성격상, 지진 재해가 발생했을 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설치 후에는 그 성능을 테스트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장치를 만드는 과정이나, 또는 만들고 난 후 출하 전 테스트 과정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등급을 매겨야 한다. 

본지는 지난 2021년 2월 <[여의도25시] '데이터 근간' 안전할까? 면진시스템 논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국판 뉴딜 '디지털 초격차' 목표 앞서 안전 점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당시 기사에서 <시장에 설치되고 있는 제품 스펙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업체 간 경쟁에서 비롯된 갈등의 범위를 넘어서는 국가적 중대 문제로 떠오를 수 있고, 실제로 강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데이터 보호를 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A사와 B사의 엇갈리는 주장을 정부가 빨리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면진시스템이 검증되지 않은 스펙으로 2017년부터 공급됐다면, 향후 강한 지진 발생 시 국가전산망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부적합한 제품이 이미 국가중요시설에 설치된 상태라면, 시험 당사자였던 조달청은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재난 방지에 대한 대책과 사업은 기본부터 다시, 돌다리 두드리듯 해나가야 한다. 국가와 국민 재산, 그리고 생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인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윤 논리나 정치적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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