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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 바꿔" 감정노동자보호법 '유명무실'

상담사 폭언 월평균 11회...법 시행 전보다 오히려 1.6배 증가

김이래 기자 | kir2@newsprime.co.kr | 2023.02.24 15:01:28
[프라임경제]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이 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콜센터 상담사를 비롯한 고객 응대근로자들의 악성민원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가이드에는 고성·욕설·협박민원과 같은 악성민원이 3번 반복되면 "고객님, 제가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안내 후 통화를 종료하도록 돼 있지만 이마저도 고객의 폭언에 노출된 후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은 감정노동자의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조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강제성이 없다 보니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콜센터를 비롯한 고객응대근로자들이 여전히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 법 개정 효과 미미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 약 703만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인 감정노동자보호법의 정식 명칭은 '산업안전보건법(개정안)이다. 2018년 10월 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으로 시행됐다. 욕설, 성희롱과 같은 고객의 폭언을 예방하고, 사업주의 근로자 보호 의무를 명시했다.

하지만 현행법 제41조 제1항을 살펴보면 고객응대근로자가 고객의 폭언으로 건강장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예방조치를 시행하도록 명시돼 있을 뿐, 사업주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벌칙사항이 없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이로 인해 콜센터 상담사들은 법 개정 이후에도 적어도 한달에 한번 이상은 폭언·성희롱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간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사가 폭언을 당한 횟수는 한달 평균 11.6회, 성적 농담 등 성희롱을 당한 횟수는 월평균 1.1회로 나타났다. 과거 2008년 동일한 질문과 비교해보면 폭언 횟수는 1.6배, 성희롱 횟수는 1.14배로 오히려 증가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도입(산안법 개정) 이후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평가는 31.0%로 감소했다는 평가 30.2%보다 높았다. 반면, 회사의 감정노동 보호조치가 강화됐다는 25.3%였다. 반면 강화되지 않았다는 37.5%로 법 개정 효과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법 개정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소중한 우리 가족이 고객님과 상담하고자 준비 중'이라는 ARS 안내멘트에도 콜센터 현장에서 악성민원 사례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벌칙조항 더 강력해야"

업계 관계자는 "법을 강제화해야 효과가 있는데 벌칙사항이 약하다보니,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법이 효과가 있으려면 현행법 보다 패널티를 더 세게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 제41조 제2항에는 근로자가 고객응대과정에서 폭언 등으로 건강장해 발생 혹은 발생 우려가 있을 시 업무중단을 시켜야 하며 안전조치가 미흡할 경우 과태료(1차 300만원, 2차 600만원, 3차 1000만원)를 사업주에 부과한다. 

한마디로 고객의 폭언 등 피해를 겪었을 때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충분한 휴식시간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또 폭언 중지를 3회 이상 안내했음에도 폭언이 이어질 경우 관리자에 이관하게 되는데 이때 '윗사람 바꿔' 문제가 고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박종태 한국감정노동인증원 원장은 "콜센터 상담사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어 규정상 안 된다고 안내하고, 먼저 끊겠다고 고지하는게 전부다. 그 이후에 관리자로 콜이 이관되면 고객이 원하는 요구사항의 일부를 보상해주기 때문에 상담사들은 긴 시간 동안 욕받이 역할만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악성민원이 계속되는 경우에도 전화를 쉽게 끊을 수 없다보니 욕설·성희롱 상담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도입해 상담사 인권과 건강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원청 책임 강화도 필요

원청사와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도 문제다. 프라임경제가 분석한 컨택센터산업총람에 따르면 2022년 컨택센터 운영형태 비율 중 직영 31%, 아웃소싱 57%다. 아웃소싱 비율이 현저히 높다. 콜센터 절반 이상이 아웃소싱으로 운영된다는 얘기인데, 따라서 원청사의 관리감독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콜센터 교육업계 관계자는 "현재 아웃소싱사가 사업을 수주할 때 감정노동자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이나 지원 등 추상적인 계획서만 제출할 뿐 결과보고를 확인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현장에서는 폭언 등 강도 높은 일을 한 후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면서 "콜센터 환경은 복합상담 문의가 많아지고 상담 난이도도 높아지는데 원청사에서 응대율과 같은 결과지표만 살피게 되면 악순환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업주가 감정노동자를 위한 조치를 재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도 강화도 필요하다. 현재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에서 감정노동자가 많은 업종인 콜센터, 병원 등 기업을 방문해 감정노동자 매뉴얼을 배포하는 등 컨설팅을 진행하는 수준에 멈추고 있다.

콜센터 업계관계자는 "고용노동부는 매뉴얼 배포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실효성있는지 사업장 점검을 통해 사업주가 감정노동예방조치를 실제로 마련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 점검과 사후 대응 사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면서 "감정노동자보호와 관련된 관리 ·감독인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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