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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악성 갭투자' 정치권 난항에 임대인 눈물

고의성 입증 모호 "피해자 구제 아닌 모두 아우르는 세심한 방안 시급"

선우영 기자 | swy@newsprime.co.kr | 2023.04.25 14:10:42

최근 인천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아파트 현관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건축왕', '빌라왕' 등으로 불리는 투기업자로부터 야기된 전세 사기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피해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분위기다. 이에 정치권은 급히 피해자 구제책 마련에 돌입했지만, 이조차도 여야 입장 탓에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임대인들에게만 화살이 집중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제시하는 여러 정책은 피해자 구제책에만 그치고 있는 것은 물론 '전세 사기'라는 단어 아래 다수 선량한 임대인들 피해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빌라와 오피스텔 무차별적 매입 이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사망한 '빌라왕' 사태 등 전세 사기 심각성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대책이 재발 방지 차원의 일회성 대응에 그친 탓에 여전히 '무자본 갭투자'로 둔갑한 전세 사기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수 선량한 임대인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다. 

"전세 사기는 모든 임대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대다수 임대인은 '전세 사기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할 수 없다. '사기'에 있어 기망고의가 없는 선량한 임대인이 오히려 '전세 사기꾼'으로 낙인 되고 있다." - 화곡동 소재 임대인 A씨

나아가 여전히 정치권에서도 '명확한 피해 주택 선정 기준'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어 전세 사기 관련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쏟아지는 '전세 사기 대책' 정치권 합의 난항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분기 서울 빌라 전월세 거래량은 2만7617건이며, 이중 전세 거래량은 1만4903건(54%)이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시작 이후(2011년) 가장 적은 수치다. 현재 전세 사기 심각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더불어 임대인이 집을 처분해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리스크도 가중되고 있다. 

실제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주택자금조달계획서(2020년 1월~2022년 8월) 161만건을 분석한 결과, 이미 전세가율이 80%를 초과하는 깡통전세 고위험군이 12만1553건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세입자 우려는 당연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월 모습을 드러낸 '전월세 종합지원센터' 상담 건수는 1469건(14일 기준)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도 현재까지 4160명이 방문했으며, 상담 건수는 8524건에 달했다. 

이처럼 전세 관련 문제가 점차 대두되자 정치권은 전방위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여야간 이견 때문에 쉽사리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 지난 23일 당정대(국민의힘·정부·대통령실)는 '전세사기 관련 특별법'을 본격 제시했다. 

당정대가 제시한 특별법은 △피해 임차인 우선매수권 부여 △매수시 세금 감면 및 장기 저금리 대출 지원 △주택 매수 여력이 없는 임차인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이 골자다. 또 빠른 시일 내 전세 사기 피해 주택 선정 기준과 우선 매수 가격 기준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에서 "특별법을 통해 피해 임차인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라며 "한시법으로 지난 정부 주택 정책 실패로 야기된 재난 수준 전세 사기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세 사기를 뿌리 뽑기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임대인뿐만 아니라 배후 세력까지 수사해 전세 사기를 비롯해 다수 서민 대상 재산 범죄 가중 처벌을 위한 '특정경제범죄법 개정'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23일 당·정 전세사기대책 협의 결과 브리핑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박대출 정책위의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 연합뉴스


조오섭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우선매수권 부여와 주택 매수 여력이 없는 임차인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등 대책은 민주당 측에서 과거부터 요청한 부분"이라며 "늦게나마 받아들여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보증금 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정부 대책에 없었다"라며 "피해자들은 평생 벌어온 보증금을 잃은 점에 대해 상심하고 있으며,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 후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선(先) 지원 후(後) 구상권' 청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도와주고 싶어도 안 되는 건 선을 넘으면 안 되며,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다양한 지원, 복지정책을 통해 최대한 사기로 돈을 잃어버린 부분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고민할 것"이라고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아울러 그는 "전세 사기 피해와 집값 하락기에 나타나는 보증금 미반환 현상을 어떻게 구분 지어 어디까지 국가가 관여하고 지원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라며 "현실적으로 800만 전세 계약 모두에 대해 국가가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상식을 가진 국민이면 이해할 것이며, 가능한 지원을 넓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첨언했다. 

◆"고의성 입증 가능할까" 선량한 피해자 발생 농후
 
"사기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갈취할 목적으로 세입자를 기망하는 범죄 행위다. 즉 고의성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 임대인은 당시 사기가 성립되지 않는 적법한 거래를 했었다. 임대인들을 무조건 전세 사기꾼으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권은 무조건적 피해자 구제책이 아닌 선량한 임대인들을 위해서도 힘써 달라" - 화곡동 소재 임대인 B씨

일각에서는 보증금 미반환과 관련해 수많은 사례가 존재해 고의성 입증이 어려운 만큼 단순 '사기'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사태로 모든 임대인이 '전세 사기꾼'으로 내몰리고 있어 자칫 또 다른 '마녀사냥'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화곡동 일대에는 빌라가 즐비하다. ⓒ 프라임경제


무엇보다 이번 전세 사기에 있어 '정확한 피해 주택 선정 기준'이 미비한 상태다. 때문에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기 여부'조차 판단하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정치권 대안 역시 피해자 구제에만 집중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 최근 지속되는 전세 시장 침체로 임대인 입장에선 주택을 매도하더라도 보증금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사기죄 성립에 있어 핵심인 '고의성' 여부는 따져보겠지만, 만일 해당 이유로 보증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사기가 아닌 사고'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률업계 관계자는 "역전세난으로 초래된 사고는 보증보험에서 처리할 보험 사고"라며 "사기 기망고의가 없는 만큼 사기죄로 처벌되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세 사기 피해와 집값 하락으로 야기된 보증금 미반환 현상을 어떻게 구분하는지가 정치권 맹점"이라며 "이를 단순히 '전세 사기'로 묶어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라고 첨언했다. 

또 다른 법률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태에서 피해 주택 선정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계속 생겨날 것"이라며 "무조건적 피해자 위주 대책 마련은 맞지 않고, 여야가 정치적 셈법이 아닌 합의를 통해 양측을 모두 아우르는 세심한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빌라와 오피스텔 무차별적 매입(1137채) 이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사망한 '빌라왕' 사태 등 전세 사기 심각성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대책이 재발 방지 차원의 일회성 대응에 그친 탓에 여전히 '무자본 갭투자'로 둔갑한 전세 사기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수 선량한 임대인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다. 

과연 정치권에서 단순 사회 문제에서 벗어나버린 '전세 사기' 논란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선량한 임대인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지 이들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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