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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세사기 채권 공공매입…대부업자 주머니만 '두둑?'

 

장민태 기자 | jmt@newsprime.co.kr | 2023.04.27 14:25:06
[프라임경제] "무슨 돈을 가지고 어느 금액에, 그 가격은 누가 정합니까?"

이는 전세사기 채권을 공공매입해야 한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주장에 대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답변이다. 정부에서 27일 전세사기 지원 방안이 발표됐다. 일단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하는 건 방안에 포함됐다.

이들은 우선매수권을 이용해 주택을 경·공매로 매입하고 피해자에게 입주자격을 부여할 방침이다. 하지만 경·공매에서 모든 전세사기 주택이 매입될지는 미지수다. 또 피해자는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하는 대신 임대료를 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번 방안은 기존 경매 유예와 동일하게 피해자의 시간을 벌어줄 뿐 보증금을 되찾아 주겠다는 게 아니다.

피해자와 야당에서 근본적인 지원책으로 주장해 오던 '선(先) 지원, 후(後) 구상권 청구'는 이번 방안에서 빠졌다. 이들은 전세사기와 관련된 부실채권을 공공매입한 뒤 피해보증금을 우선 임차인에게 반환하는 방안을 요구해 왔다.

정부에서 이들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미 꽤 많은 수의 채권이 영세한 부실채권(NPL) 매입기관을 비롯한 대부업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피해 구제를 위한 '골든타임'이 지나버렸다.

전세사기가 수면위로 드러난 건 지난해 12월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지원방안을 내놓은 건 이로부터 5개월 뒤다.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경매 일정의 중단 및 유예 방안을 보고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보고한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변수가 나타났다. 은행을 필두로 대부분 금융회사들은 정부의 요청에 따랐지만, 모든 경매가 유예되지 않았다. 이는 대부업자인 영세한 부실채권(NPL) 매입기관이 경매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피해주택을 담보로 한 채권(부실채권)을 은행 등 금융회사로부터 싼값에 매입해 경매에 넘겨 이익을 얻는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부실채권을 넘김으로써 추심에 소모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문제는 NPL 매입기관이 경매를 강행하더라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일명 '건축왕 전세사기'에 이용된 피해 주택 1787채 가운데 440채의 근저당권이 이들에게 넘어갔다. 다시 말해 4채 중 1채는 이들 손에 있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는 이미 인천 등 일부 지역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NPL 매입기관이 보유한 채권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로선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당근'을 통한 설득뿐이다.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선(先) 지원, 후(後) 구상권 청구'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가 NPL 매입기관으로부터 채권을 사들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날 정부에서 내놓은 방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포함되지 않은 원인으로 '채권 매입 가격'이 꼽힌다. 캠코가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지 못하면, NPL 업체는 경매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격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가진 건 NPL 매입기관 측이다.  

즉 캠코를 이용한 채권 매입 방법은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공적자금이 대부업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혈세 논란’이 제기된다. 혈세가 아깝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지 예상이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기 피해를 국가가 떠안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더라도 사기 범죄를 국가가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 발언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제 전세사기 지원과 관련된 바톤은 금융정책 기능을 맡은 금융당국에 넘어갔다. 피해자들의 시곗바늘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건전한 신용질서 확립과 포용적인 금융 사이에서 금융당국의 고뇌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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