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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취업규칙 변경과 근로자 동의 ‘기준의 모호성’

 

이유진 기자 | lyj@newsprime.co.kr | 2023.05.16 16:17:14
[프라임경제]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취업규칙을 만들 때 반드시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게 됐다. 대법원의 판단이다. 1978년부터 통용되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45년 만에 무의미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1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관련해 현대차 간부사원 A씨 등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 근로자 동의가 없다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더라도 무효라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밝혔다.

아울러 노동자와 근로자의 동의권 남용 부분에 대해 △사회 환경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사용자 진지한 설득과 노력이 있었음에도 근로자가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변경에 반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사용자가 종래 취업규칙을 개정하거나 또는 새로운 취업규칙을 만들어 근로조건·복무규정에 관해 근로자 기득권 침해나 저하된 근로조건, 강화된 복무규정을 일방적으로 부과함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그동안 이에 대해 △근로자 과반수나 과반수 노조 동의가 있는 경우 △과반수 동의가 없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예외를 인정했다. 또한 동의권 남용 여부를 엄격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기존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도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근로자 동의권 남용 역시 해석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동의권 남용 여부를 엄격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향후 이를 인정받는게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반기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주관적 개념으로, 뚜렷한 기준 없이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공정성에 문제가 많았다"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환영하는 만큼 사용자에게는 불이익으로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노사관계에서 근로자 권리 및 지위 보장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처사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취업규칙 변경으로 경영상 위기를 관리하거나 존립 안정성을 확보할 수도 있어서다. 기업 존폐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 

이미 노동조합법에는 방어 및 대항 수단으로만 근로자 쟁의행위에 의한 직장폐쇄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성실교섭의무를 위반할 경우 노동자보단 사용자에게 불이익을 가할 정도로 근로자를 우선시한다. 

이런 상황에도 취업규칙 변경까지 근로자 손을 들어준 판결이 나왔다. 노동권 보호 못지않게 기업 활동도 존중해줘야 마땅하다. 기업과 노동자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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