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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禮'는 오고가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박종선 세종교육원 원장 | pjs530106@gmail.com | 2023.05.31 09:19:37
[프라임경제]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곧 너와 내가 서로 관계하는 것이다. 부모 형제 친지 뿐 아니라 대리 상하노소 거래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물처럼 엮인 복합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즉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관계를 더욱 화목하고 질서 있게 만드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예(禮)'다. '예'가 없으면 '무례'이고 잃어버리면 '실례', 갖추지 못하면 '결례'다. 모두 실천적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예의가 없다'라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행정관료 △여·야 국회의원 △정치지도자 가운데도 언론기자의 질문에 '예의가 없다'며 답변을 거부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 이유나 △원인 △내용 △태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언론측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리 질문했다는 주장을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 '누구에게 예의가 없다 하는가'라는 빈축은 진정 무례한 사람이 누군가를 찾게 만든다. 

기업상사와 부하직원을 비롯해 △스승과 제자 △아파트 주민과 관리사무소 직원 △노인층과 젊은층 △남성과 여성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도 '예의가 없다'라는 말이 적지 않게 오고간다. 특히 상대적 약자나 아랫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가 없다'한다는 불만도 많다. 당위야 어떻든 당사자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임에 틀림없다.

'예'는 법규와 달리 강제성이 없는 사회윤리적 행동규범이다. 종교의식에서 시작됐다고는 하나 일상 의식은 물론 구성원 간의 화목,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도리·제도 등을 포괄하는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진다. 

좌전(左傳)에는 '예'는 나라의 줄기요 몸의 줄기라고 했다. '예'를 지켜야 나라도 사회도 자신도 모두 건전해진다는 의미다. 비록 강제성이 없다 하더라도 '예'에는 관혼상례와 같이 일정한 준거가 되는 예법과 예식, 태도나 몸가짐인 예의, 절도가 필요한 예절이 있다. 모두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특히 절도를 지키고 넘지 않아야 한다. 번잡하고 과다한 '예'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얼마 전(2020.7) 조선일보가 보도한 우리나라 성인들의 나와 남의 예의를 보는 조사결과는  큰 시각차이가 있음을 알려준다. '나는 예의바른가, 남들은 예의바른가'라는 별개의 질문에 '그렇다'라는  응답비중이 각각 48%, 29%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남들은 예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우리 사회에서 예의의 잣대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48%)'가 '그렇다(8%)'보다 월등히 많았다. 복수응답으로 질문한 예의에 미치는 영향잣대는 나이(63%), 상사 등 직장 내 권력 관계(47%), 비즈니스나 서비스에서 갑을 관계(40%), 성별(26%) 순으로 나타났다. 공평한 잣대를 세우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부터 솔선해야 우리사회에서 '예'가 바로 선다는 시사라 하겠다.

일찍이 '예를 모르면 사회에서 설 수 없다'고 공자는 말했다. 그러나 '예'는 일방만이 아닌 서로 오고가는 양방적 덕목이다. 때문에 반례(返禮, returning a courtesy) 역시 중요하다. 사의, 경의, 경례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기(禮記)는 이렇게 전한다. '예'는 서로 오고가는 것을 존중한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고,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우리는 보다 윤리적인 사회구현을 위해 예의 왕래를 생활화해야 한다. 국보1호 남대문을 숭례문이라 부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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