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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경의 문해력 칼럼] 갈음하다

 

이가경 칼럼니스트 | bonicastle@naver.com | 2023.07.18 18:04:56
[프라임경제] 갈음하다 -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하다, 대체하다.

손만 뻗으면 늘 닿는 곳에 그가 있었다. 방향을 틀어 저만치 떨어져 있어도 다시 손을 뻗으면 그의 손이 닿았다. 내 옆으로, 뒤로, 때론 앞으로, 그는 나의 사방에 존재했다.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고, 다시 싹이 트는 계절을 그와 서너 번을 겪고선 늘 당연하던 그의 손이 터부시되기 시작했다. 사랑의 기본 값이 시시해져 버린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게끔 모습을 숨겼다. 흐르는 바람결에 날숨이 들킬세라 애써 숨을 죽이고 몸을 구겼다. 머나먼 거리에서 그의 울음이 내 귓가를 탔고, 그의 손길이 모래처럼 흩어지는 걸 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끝내 그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득 먼 시간을 헤매 내게로 와준 '것'들에게 가볍게 맘 한편을 내주고 살면서 왜 그에게는 그러지 못했을까 자문해보았다.

그때 나는 익숙한 것들에게 종종 안녕을 고하곤 했는데, 그 익숙함에 길들어진(불만족스럽고 못마땅한 환경과 조건들에 끼워 맞춰진) 내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되새기던 밤마다 그는 내 옆에 있었다. 그는 나의 어둠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고, 나의 불행을 목도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의 어둠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사람, 어쩌면 어둠이 곧 그 때문이라고 정의 내렸다. 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둠을 떨쳐내야 하듯 그런 기가 막히는 논리로 그에게서 멀어지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살다가 가끔, 옛적의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마음이 툭 하고 바닥에 고꾸라지는 날이나 앞이 컴컴해서 방황할 때마다 그의 손은 신기루처럼 등장하곤 했다.

여전히 뭉툭하고 제법 큰 손바닥이 나를 향해 펼쳐지면, 그래왔듯 내 어둠을 덜어서 그의 손 위로 얹어냈다. 숨이 가뿐해졌던 그 날처럼, 이제는 다른 손으로 갈음된 일상이 그렇게 펼쳐진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갈음되듯 시간도 다른 시간으로 갈음된다. 희망이 또 다른 희망으로, 희생이 또 다른 희생으로 그렇게 물감이 번지듯 수많은 갈음이 반복되는 것이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는 무엇을 갈음할 수 없다는 것은 영원을 의미하는 것인지 끝을 알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 갈음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결론은 일단 미완이다. 

다만 지극히 소중한 것도 결국 다른 것으로 갈음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다. 갈음의 경계에 설 때마다 어느 것을 달리 붙잡을 힘도 막아설 이유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순간도 다가올 시간으로 갈음되고 말테지만 나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내며 움켜쥔 것들을 고이 내려놓아야함을 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덜어내면서 그렇게 다른 '것', 다른 '사람'과 이어지는 것이 결국 '사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가경 칼럼니스트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마흔의 온도> 저자, 필명 이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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