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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균형발전·경제성 '양립불가'…산은 노조 눈총받는 까닭

 

이유진 기자 | lyj@newsprime.co.kr | 2023.08.03 09:32:21
[프라임경제] "가족들 두고 지방에 내려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회사 특성상 정책을 따라야 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 희생도 없이 지역발전을 일군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고요."

최근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은) 본점 지방이전과 관련해 한 공공기관 관계자와 나눴던 대화다. 산은 부산이전을 두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이하 산은 노조)와 산은 간 갈등이 2일 기준 422일째 지속되고 있다.

양측 입장차가 분명하다. 산은은 국토발전 효과를 강조하는 반면 산은 노조는 지방이전 시 경제적 손실을 주장한다.

사측과 노조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산은의 정체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은은 산업자금의 공급과 관리를 위해 세워진 정부 출자 은행이자 기타공공기관에 속하는 기관이다. 한국산업은행법 제1조에 따르면 '산업의 개발·육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지역개발, 금융시장 안정 및 그 밖에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가 목적으로 규정돼 있다.

또 현행법 제5조에 따르면 산은 자본금 100분의 51이상은 정부가 출자한다. 산은은 금융기관이면서도 공익 추구가 불가피한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한마디로 산은은 공공기관이다. 이같은 정체성에 공공기관 종사자 사이에서는 본점 지방이전을 반대하는 산은 노조를 비난의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 형평성 때문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해 2019년까지 이미 1차로 실시됐다. 당시에도 반발은 존재했지만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등을 포함한 153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결국 이동했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산업은행이 부산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음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이전공공기관 지정에 따라 산은을 수도권 잔류기관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이로써 산은 부산 이전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산은 노조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소재 산업은행 본점에서 '부산 이전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 결과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연구용역 보고서는 부산 이전이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게 골자다. 

그간 노조에서 주장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노조는 지방 이전시 여의도 위주로 구축된 금융시장에서 열외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로 인해 수익을 제대로 창출할 수 없고 정책금융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산은 노조 의견에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는 '산업금융 터전 이동'이라는 큰 변화 앞에 충분히 점검해야할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은행 지방이전의 핵심 취지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산업은행 노조측이 제시한 연구 결과는 정부의 공약 추진 동력을 막기엔 어려워 보인다. 국토균형발전과 경제성이 합치하면 좋지만 대체로 양립이 어려운 게 현실이며, 지역사회 몰락과 수도권 과밀화를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국토균형발전이 존중되어야 할 정책 안건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어서다.

대통령 공약에 얽힌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정쟁의 중심에 있다. 여야 간 입장 차로 지난해 5월 한국산업은행법(이하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상정 및 법안심사 제1소위에 회부된 뒤 11월 한 차례 논의된 것 외에는 사실상 심사가 중단된 상태다.

부산 이전이 공식화된 이후 산업은행은 지난해 97명이 퇴사하고 올해 상반기 44명이 떠났다. 산업은행 안팎으로 반대가 큰 상황이다.

또 공공기관 1차 이전이 무의미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던 세종시가 공공기관 이전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면 이와 같은 비판은 다시 맹목적 비난으로 읽힐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지역 금융 인프라 구축에 선순환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여러 금융기관이 모여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 필수다. 산업적 파급 효과는 지방으로 이동한 금융기관들이 밀집된 이후 기대할 수 있다. 

산은 이전이 현실화된다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앞서 지방으로 옮겨간 공공기관들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와 은행은 다양한 입장을 충분히 수용하고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공공기관 관계자 말을 되짚어본다. 산은이 공공기관인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지방이전 발표와 함께 늘어난 퇴사는 직원들의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 이익과 편의를 생각하는 것도 기업과 근로자의 역할이지만 권리를 찾기 이전에 자신이 속한 기업의 성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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