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전세사기로 드러난 감정평가사 민낯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입자"

빌라 위주 '업감정' 부동산 평가액 부풀리기…방지 대책 시급

선우영 기자 | swy@newsprime.co.kr | 2023.10.31 14:29:19

지난해부터 수면 위로 올라온 전세사기 피해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 감정평가사 A씨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등 9건 담보목적 감정평가액을 확정(2019년 10월~2020년 4월)할 당시 동일 단지 내 유사 거래 사례가 존재함에도 불구, 이를 배제한 채 고액 거래 사례를 선정해 감정평가액을 높였다. A씨는 업무정지 2년을 처분받았다. 

# 감정평가사 B씨는 2022년 1월 부산 남구 대연동 소재 빌라 감정평가서를 작성하면서 동일 단지 내 거래 사례가 존재하고 전유면적에 따른 거래 단가 격차도 있었지만, 단지 외부 고액 거래 사례를 선정하면서 빌라를 과다하게 감정했다. 이로 인해 업무정지 1개월을 처분받았다.

전세사기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 1년이 지났다. 전세사기 특별법도 모습을 드러낸 지 5개월이 경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규모 전세사기가 끊이지 않는 등 좀처럼 상황은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사기 수법이 갈수록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정부 대책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전봉민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지난 16일 기준)에 따르면, 올해 전세 사기 △피해자 4481명 △피해금액 5105억원이다. 

이런 수치는 현재까지 드러난 규모에 불과할 뿐 향후 피해 규모가 더욱 불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실제 최근 확인된 수원과 대전 지역 전세사기 예상 피해액은 각각 500여억원, 25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 역시 관련 특별법 및 금융지원 조치 등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또는 사각지대가 노출되는 등 허점이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가 향후에도 꾸준히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범행 대상을 모색하거나 저지르고 있을 텐데, 워낙 다양한 수법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 정책이 사전 예방책이 아닌 사후 대책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아쉽다"라며 "또 특별법 구제 대상에 모든 피해자가 적용되기 어려운 점, 전세제도 특성상 사기 범죄에 있어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점 등 허점들이 만만치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전세사기 심각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기 수법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특히 감정평가사와 전세사기꾼과 합의해 건물 감정가를 부풀리는 '업감정'이 사기 수법으로 자리하면서 비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업감정은 '무자본 갭투자' 전세사기에서 흔히 등장한다. 전세사기꾼과 감정평가사가 합을 맞춘 이후 부동산 평가액을 부풀려 전세금을 올려 받는 것이다. 특히 공시가‧실거래가가 없어 감정평가 가격을 온전히 인정받는 신축 빌라 위주로 사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감정평가사의 경우 개인 재산은 물론, 사회‧공공성이 큰 부동산 같은 재산의 가격을 감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춘 '전문 자격사'라는 점이다. 높은 도덕성과 직업윤리 의식이 요구되는 직업이란 의미다.

더군다나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 전세보증보험 가입 심사에 있어 감정평가액을 최우선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감정평가서가 전세사기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지속되는 전세사기 여파로 피해자들 아우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 일부 감정평가사들이 이런 특성을 악용, 업감정을 통해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면서 직업의식을 부정하고 있다. 나아가 감정업계 전체적 이미지까지 훼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 주범=공인중개사'라는 인식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공인중개사들과는 달리 일부 감정평가사는 이번 사태와 무관한 척하면서 여전히 뻔뻔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범죄에 가담한 감정평가사가 감정 평가액을 부풀려도 세입자는 보증금 적정 수준을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결국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런 수법은 확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비난했다. 

HUG가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감정평가사를 거친 전세보증보험 사고 금액은 지난해 2234억원(960건)으로 확인됐다. 사고 금액은 △2018년 8억원 △2019년 22억원 △2020년 52억원 △2021년 662억원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는 감정평가사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안심전세앱 2.0을 통해 매물 부풀리기 방지에 나서고 있다. 또 전세 보증금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전세보증금‧주택가격) 100% 이하에서 90%로 조정하는 등 대대적 손질을 감행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 감정평가사가 가담한 전세사기 근절은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실제 지난 7월 전세사기 일당이 요구한 금액대로 부동산을 '업감정'한 감정평가사 24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브로커는 업감정 의뢰 건당 수수료(100~1000만원)를 받고 감정평가사들은 감정평가 법정수수료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로 지급받으면서 수익을 창출했다. 

물론 관련 업계에서는 감정평가사가 모든 원흉이자 주범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피해가 지속되는 만큼 관련 관리·감독 강화는 필수라고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관련 협회 차원에서의 권한(관리‧감독‧처벌)이 한정적인 만큼 이에 따른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감정평가사에 대한 관리‧감독‧처벌을 정부 홀로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악순환 방지를 위해 관련 협회에게 일부 권한을 위임하는 방안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세사기 가담 의혹으로 일부 감정평가사들이 송치됐지만 최종 법원 판결은 도출되지 않은 만큼 지켜봐야 한다"라며 "11월 논의가 진행될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에 있어 그동안의 허점들을 봉합하는 세심한 방안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세사기가 갈수록 확대되는 가운데,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감정평가사의 전세사기에 가담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과연 정부가 어떤 방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나아가 사회에 깊게 자리한 전세사기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