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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일본 톺아보기] "日 천재 소녀 기사, 한국행"으로 살펴본 한일 바둑 소사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3.11.09 12:41:30

이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나카무라 스미레 여류기성. ⓒ 마이니치 신문


[프라임경제] 일본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는 나카무라 스미레(14세, 이하 스미레) 여류기성이 한국에 온다. 

스미레는 지난 10월30일 일본기원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높은 레벨, 환경에서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한국은 국제대회를 중시하고, 젊은 기사들을 위한 기전이 많다"며 이적 이유와 포부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2019년 일본 기원 '영재특별채용' 케이스로, 불과 10세에 프로기사가 된 스미레는 지난 2월 역대 최연소(13년 11개월) 나이로 여류기성에 올랐다. 

이런 그녀가 내년 초 기성전을 마치고, 3월부터 한국기원으로 이적한다. 일본 기사로는 역사상 첫 해외 이적이다. 

고바야시 사토루 일본기원 이사장은 스미레의 한국 이적과 관련해 10월30일 TV 아사히를 통해 "그녀의 바둑, 성격이 한국에 맞는다는 걸 바로 느꼈다. 일본은 기예를 연마하는 게 먼저고, 승패는 그 다음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승패가 먼저다. 지금 시대는 이기는 바둑을 두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바둑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해 한반도와 일본 등 동남아에 전파된 이후 상류층 여기(餘技)로 오랜 세월 존속하고 있다. 바둑이 근대적 게임 형태를 갖추게 된 건 중세 일본 전국시대와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서였다.

바둑을 좋아했던 도쿠가와는 본인방 산사(算砂) 등 네 가문에게 바둑계를 통괄하도록 명하고 녹봉을 내렸다. 이때부터 포석과 정석 등 근대 바둑 이론이 정립되고 바둑을 업으로 삼는 기사 제도가 도입된다. 

1620년 산사가 일본에 방문한 조선 일인자에게 '3점을 접어주고 이겼다'라는 기록도 나온다(위키피디아 재팬). 당시 일본 바둑이 주변국 아마추어 고수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프로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메이지유신을 통한 서구화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바둑은 1923년 일본기원 설립과 함께 신문사 기전을 중심으로 현대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 '천재기사' 오청원(우칭위안)과 '제자' 임해봉(린하이펑)을 불러들이고, 1960년대 조훈현과 조치훈 등 한국 유학생이 들어오며 일본 바둑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실제 일본은 1980년대까지 '현대바둑 메카'이자 '넘볼 수 없는 아성'이었다. 

이런 일본 전성시대에 종말을 예고한 게 바로 조훈현이었다. 

바둑 유학 중 군 복무로 귀국한 조훈현은 1989년 1회 '응씨배 세계 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일본과 중국 특급 기사를 연파하고 트로피를 거머쥔다. 변방 취급을 받던 한국 바둑이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실제 이후 한국은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 대회에서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돌아가며 4연속 우승을 일궈냈다. 

응씨배 직전 일본이 개최한 국제기전 후지쓰배(매년 개최)조차 한국 기사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처음 5회까지 일본이 우승을 독차지하지만, 한국이 1993년 유창혁 우승을 시작으로 반격하면서 이후 마지막 대회인 2011년까지 총 19번 대회 중 16번 우승을 쓸어 담는다. 나머지 3번은 중국이 차지했다. 

현재 세계 바둑 판도 역시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양강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일본이 뒤처진 모양새다. 

중국이 1981년 바둑협회 설립과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 프로를 육성하면서 2000년대 들어 한국을 위협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3년 전부터 신진서·변상일 등 급성장한 신예 그룹을 바탕으로 한국이 또 다시 글로벌 주요 대회를 석권하고 있다. 이들 기세를 감안하면 한국 상승세는 오랫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여자바둑의 경우 한국 강세가 더 뚜렷하다. '최정'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넘어설 라이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김은지 등 젊은 신예들 성장세가 한국바둑의 밝은 미래를 대변하고 있다. 스미레가 부러워하는 '젊은 기사들을 위한 기전'이 성장 원동력으로 분석된다. 

한편 앳되고 귀여운 외모와 함께 야무지게 바둑돌을 두드리는 모습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미레는 프로 입단 전인 8~9세 때 주말마다 한국에 건너오거나 단기 체재를 하며 한국바둑을 공부했다. 

지난 7~10월에는 한국여자바둑리그 '순천만국가정원' 팀 외국인 기사로 참가해 7승2패 성적을 거두며 가능성을 보인 바 있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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