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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증권 결산] 주가조작 만연…증권사 수장도 '추풍낙엽'

라덕연·영풍제지 사태 중심에 키움증권, 오너·대표이사 사퇴까지

이정훈 기자 | ljh@newsprime.co.kr | 2023.12.21 18:05:15
[프라임경제] 약세장으로 돈 벌기 어려웠던 올해 주식시장에는 주가조작마저 넘쳐났다. 중심에 섰던 키움증권(039490). 그 수장은 추풍낙엽처럼 추락했다.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뿌리 뽑기'에 더욱 강력한 엄벌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는 '라덕연 사태'와 '영풍제지(006740) 사태' 등 굵직한 주가조작 사건이 많았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키움증권과 관계있다는 점이다. 

라덕연 사태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전 회장의 사퇴에 시발점이 됐다. 영풍제지는 23년 개국공신 황현순 키움증권 전 대표이사 사장의 자진사임에도 영향을 끼쳤다.

◆CFD 계좌 '익명성' 악용…미공개정보이용행위 적극 활용

라덕연 사태는 지난 4월24일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어테제너랄(SG)증권 창구를 통해 8개 종목이 무더기로 하한가를 맞은 사건이다. 배후로 라덕연 호안투자컨설팅 대표가 지목되면서 '라덕연 사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지난 5월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 중인 모습. ⓒ 연합뉴스

라 대표 일당은 당시 SG증권의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이용했다. CFD는 계좌 익명성이 유지된다. 주가조작 세력에게는 이러한 익명성이 부당이득을 챙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주가조작 세력들은 CFD 계좌의 익명성을 이용해 미공개정보이용행위를 적극 활용했다"며 "이러한 CFD 레버리지 특성으로 투자원금 대비 부당이득 규모가 컸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수법은 CFD 계좌로 대규모 매수 후 일반 위탁계좌로 시세를 견인했다. 이는 지분신고를 회피하기 위함으로 CFD 계좌와 일반 위탁계좌를 나눠 시세조종행위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주가가 상승하면 CFD 계좌 보유물량을 매도해 부당이득을 편취했다.

CFD 계좌의 주문은 주로 외국계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를 통해 시장에 호가가 제출됨에 따라 외국인 또는 기관투자자의 매수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이후 일반 투자자들의 추종매매를 야기했다. 주가조작 세력들이 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해 일반 투자자들의 추격매수를 이끈 식이다.

검찰은 라 대표 일당이 이 수법으로 총 7305억원의 부당한 수익을 올렸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고객의 CFD 계정을 위탁 관리해 1944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로 라 대표와 변모 호안에프지 대표(40), 안모 전직 프로골퍼(33) 등 11명을 형사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정도성) 심리로 1심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11회 공판기일이 열렸다. 다음 기일은 이달 21일에 열렸다.

◆김익래 회장, 절묘한 다우데이타 처분 시점에 "시기적 우연일뿐"

라덕연 사태에 의외의 인물이 나오기도 했다. 바로 키움증권 오너인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전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라덕연 사태가 터지기 직전 보유 주식을 처분하면서 주가 조작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총 8개의 무더기 하한가 종목 중 김 전 회장에게 문제가 된 종목은 다우데이타(032190)다. 김 전 회장은 지난 4월20일 시간외매매로 다우데이타 140만주(3.65%)를 주당 4만3245원에 처분했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자금은 605억원에 달한다. 김 전 회장의 다우데이타 지분율은 26.66%에서 23.01%로 감소했다.

절묘하게도 김 전 회장이 지분 매각 이후 이틀 후인 4월24일부터 다우데이타 주가는 SG증권발 매도 폭탄에 2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당시 다우데이타 주가는 5만원에서 1만6000원까지 66% 이상 폭락했다.

이후 황 전 사장은 사건이 터진 직후 김 전 회장 보호에 나섰다. 그는 김 전 회장의 다우데이타 처분에 대해 "(시기적) 우연"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논란이 지속되자 그는 지난 5월 그룹 회장과 키움 증권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금융당국은 김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세력과의 연루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다.

◆'막을 수 있었는데'…증거금율 40% 유지로 세력 키운 키움證

영풍제지 사태는 지난 10월18일에 발생했다. 올해 730%까지 상승했던 영풍제지와 이 회사 지분 45%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대양금속(009190)의 주가가 급작스럽게 동반 하한가를 기록했다. 

검찰은 주가조작 세력이 지난해 10월부터 영풍제지 주식 3597만주가량을 시세조종해 2789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일당 중 8명이 구속기소 됐다. 다만 총책 이모씨의 신변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 두 종목에 대한 계좌가 집중적으로 활용된 곳은 키움증권이다. 키움증권은 4000억원 규모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에 따른 손실까지 발생해 키움증권은 금융당국의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금융당국 관계자는 "증권사의 미수나 신용거래에서 증거금율은 리스크 관리 영역"이라며 "영풍제지의 심상치 않은 주가 상승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키움증권은 리스크 관리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꽤 수위 높은 지적까지 나왔다.

문제는 키움증권이 영풍제지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화근이 됐다. 이미 영풍제지에 대한 경고음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미래에셋증권(006800),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005940), 삼성증권(016360) 등 다수 증권사는 올해 초부터 지난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율을 100%로 상향조정해 미수거래를 불가능하게 막았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과 8월 영풍제지를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터진 지난 10월18일까지 증거금율을 40%로 유지했다. 이는 40만원만 있으면 100만원의 주식을 외상으로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키움증권이 영풍제지 사태를 키웠다는 의미다.

이틀 후인 지난 10월20일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관련 4939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고 공시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해당 미수금은 키움증권의 상반기 순이익(4258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러한 소식에 키움증권은 주식시장에서 23% 폭락하기도 했다.

◆미수금 발생에 책임 떠안은 23년 개국공신 황현순 대표이사

주가조작사태 진원지로 또 지목되면서 개인 투자자 점유율 1위 명가에서 '세력들의 놀이터'라는 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형국이다. 김 전 회장이 라덕연 사태와 관련 없다며 "직을 걸겠다"던 23년 개국공신 황 전 사장은 영풍제지 사태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황현순 키움증권 전 대표이사 사장과 키움증권 사옥. ⓒ 키움증권 편집

업계에서는 키움증권이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금융당국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진 않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됐다. 김 전 회장이 라덕연 사태 연루 의혹 이후 리스크 관리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또 다시 주가조작 세력의 창구로 활용돼서다. 

이에 이번 황 전 대표이사의 사임은 김 전 회장의 문제로 그룹 차원의 선제적 조치란 풍문이다. 물론 김 전 회장에 대한 조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다우키움그룹은 증권사를 강제 매각해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키움증권은 "황 사장이 대규모 미수 채권 발생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이사회에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을 아꼈다.

◆금융당국, 부당이득 과징금 2배 등 '엄벌' 예고

이러한 주가조작 사건에 시장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거셌다. 이에 금융당국과 검찰, 한국거래소가 손을 잡았다. 이들은 주가조작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김주현(왼쪽)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불공정거래 조사에서 강제 조사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년 1~2회가량 발동되는 압수수색 권한의 활용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내년 1월부터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은 최대 2배까지 환수할 수 있게 된다. 내년 1월19일 시행되는 자본시장법은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중요정보이용·시세조종·사기적부정거래)에 대한 과징금 신설 △부당이득 산정방식 법제화 △자진신고자 제재 감면 등 불공정거래 대응 제도 전반의 개선이다.

기존 과징금 산정기준 체계(기준금액→부과비율 반영→과징금 감면)에 불공정거래 과징금도 반영된다. 중요도, 감안사유를 종합 감안해 부당이득액 기준 2배 범위 내 부과비율이 결정된다. 부당이득액 산정 곤란 시 20억원을 상한으로 해당 거래금액의 5%를 부당이득액으로 간주한다. 2배 부과 시 불공정거래 과장금은 최대 40억원이다.

주가조작 세력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최대 3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최근 5년(2019~2023년 10월) 간 불공정거래 신고에 대한 포상 건수는 연평균 2건에 불과하다. 포상금 지급액은 1건당 약 2800만원 수준에 못 미쳤다.

포상금 산정 기준도 개선한다. 추진 중인 포상금 산정 기준은 사건 조사 결과 혐의자에 부당이득이 발견될 경우 범죄 수익 규모에 따라 신고자의 포상금이 더 지급되도록 '부당이득'도 포상금에 반영한다.

신고자 부담을 덜기 위해 익명 신고도 가능하다. 다만 이후 포상금을 지급을 위해 신고일로부터 1년 이내에 자신의 신원과 신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신고 포상금은 내년부터 정부 예산에 반영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금감원에서 지급해왔다. 이 포상금도 금융회사 분담금인 금감원 예산으로 지급됐다. 이번 신고 포상 사업은 내년도 정부예산에 반영돼 국회 심의 중에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는 대표적인 지능형 범죄로 포착이 어렵고, 조사·수사 과정에서 혐의 입증도 까다로워 신고나 제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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