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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실거주 의무 폐지'…약인가 독인가

 

선우영 기자 | swy@newsprime.co.kr | 2023.12.28 14:46:41
[프라임경제]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1‧3 대책에서 제시한 '실거주 의무 폐지' 관련 법안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국회 국토위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여기에 추가 법안소위조차 무산되면서 연내 처리는 물론 21대 국회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실거주 의무 폐지 발표로 인해 다수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현존하고 있는 실거주 의무 법안 취지를 손상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당시 정부가 제시한 실거주 의무 폐지는 부동산 시장에 잠시나마 힘을 보태기는 했다. 1순위 청약 경쟁률이 3.7대 1 수준에 그쳤던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무순위 청약을 통해 계약률 100%를 달성했다. 뒤이어 영등포 자이디그니티도 1순위 청약에서 198대 1이라는 성적으로 완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1년째 국회 법안소위에서조차 통과되지 못하면서 혼란은 커진 상황이다. 먼저 정부 대책을 믿고 청약에 도전한 수분양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시 미분양 아파트들은 '실거주 의무 폐지'를 홍보수단으로 내세웠다. 저 역시 이를 믿고 청약에 나섰다. 입주할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올해 국회를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불안감에 은행대출 등을 지금 다시 알아보고 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 당첨자 A씨의 말이다. 정부 발표를 믿고 영끌‧빚투에 나선 수분양자들의 고통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투자의 희망도 잠시, 다시 빚의 수렁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4만7595가구에 달한다. 이중 당장 내년에만 1만5000여가구가 청약 당첨된 집을 전세로 놓지 못하고 입주해야 하는 처지다.  

이같은 수분양자들의 불안감과 더불어 실거주 의무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해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거주 의무는 2021년 수도권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 주택을 대상으로 도입됐다. 분상제를 통해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을 지원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2021년 2월19일 이후 분양된 단지가 대상인데, 일반분양 당첨시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 거주해야 한다. 의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즉 실거주 의무 제도는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실수요자만 청약받아야 한다는 게 궁극적 취지다. 여기에는 무분별한 투기를 방지하자는 목적도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실거주 의무 폐지 반대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해당 제도가 갭투자를 통한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수분양자들에 대한 일종의 방패 역할을 자처했다는 게 이유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누리꾼 B씨는 "실거주를 감안하고 분양한 실수요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적어도 현존하는 실거주 취지를 종합하면 거주 이행은 지극히 당연하다"며 "언론에서도 법 개정사항으로 국회 입법이 필수라고 보도했는데, 이를 직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거주 취지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다양한 사유로 입주가 불가능한 수분양자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거주할 것이 아닌데 정부 발표 이후 청약에 도전했다는 점은 투기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시세 차익을 위한 투자 수단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목적의 청약 수요가 집중된다면 순수 주택 본질인 '실거주'를 위해 청약한 실수요자들 피해는 불가피하다.  
 
실거주 의무는 그간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잠재우는 긍정적 제도라는 성과도 거뒀다.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 도모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쟁거리가 돼 왔다. 그렇다고 지난 정부의 모든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고 논하기는 무리수다. 실제 현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허둥지둥 실거주 폐지 카드를 꺼냈지만, 이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은 부족했다.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실수요자 주거 안정과 부동산 시장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이 제기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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