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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9' 부진에 파격 할인, 기아 전동화 키맨의 아쉬움

지난해 판매량 목표 절반 수준…대중 브랜드 한계·플래그십 가치 훼손 불가피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4.01.16 13:58:08
[프라임경제] 기아(000270)의 모든 미래 계획의 중심에는 전기차가 있다. 전기차의 대중화를 이끌고, 전동화 모빌리티 시대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먼 미래에는 '기아=EV 브랜드'라는 각인을 바라고 있다.

그런 기아가 지난해 적지 않은 실망에 휩싸였다. 브랜드 라인업에서 새로운 플래그십이자 국내 최초 3열 대형 전동화 SUV EV9이 야심차게 등장했는데, 기대와 달리 기아의 기운을 빠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EV9이 제 역할을 못해준 탓에 '전동화 가속화'라는 기아의 계획이 자칫 미끄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V9은 전동화 라인업에서 큰 형임에도 불구하고 덩칫값을 못하는 동시에 신차 효과마저 누리지 못하며 저조한 성적을 받아들었다. 지난해 5월 사전계약을 시작한 EV9은 6~12월 국내에서 8052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당초 판매 목표였던 1만6000대의 절반에 그치면서 제 역할을 못했다. 사실상 '실패'에 가깝다.

출시 직전인 5월까지만 해도 EV9의 소비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판매가격이 공개되지 않는 사전계약에서 영업일 기준 8일 만에 1만대를 돌파(1만367대)했다. 이는 K9(2012년, 15영업일 3201대), 모하비(2019년 11영업일 7137대) 등 기아의 역대 플래그십 모델들의 최종 사전계약 대수를 훌쩍 넘는 기록이었다.

화려한 등장과 함께 실패 없는 성공 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되던 EV9의 부진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EV9은 기아의 전동화 대전환을 이끄는 새로운 플래그십이자 전에 없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가장 혁신적인 국내 최초 3열 대형 전동화 SUV다. ⓒ 기아


먼저 해외시장과 달리 국내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상황에서 EV9의 지나치게 높은 판매가격 책정이다. EV9은 트림에 따라 시작 판매가격이 7300만~8100만원부터 하며, 풀 옵션의 경우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보조금도 예전만 못해 구매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게 됐다. 

더욱이 국내 소비자들은 국산 브랜드 모델의 판매가격에 심리적 저항선(마지노선)이 존재하는데, 기아 모델을 7000만원 이상을 지불하고 구매할 소비자들은 한정적이다. 즉,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기아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있는데, 그 브랜드 가치 대비 과도하게 형성된 가격이 지적된 셈이다. 앞서 기아의 고급화 전략에 있어서 키맨(Keyman)이었던 K9의 부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업계 관계자는 "EV9은 국내에 출시된 대형 전기 SUV들 중(BMW iX, 메르세데스-벤츠 EQS SUV 등)에는 가격 장벽을 낮춘 모델이긴 하지만, 기아가 프리미엄 보다는 대중 브랜드에 가깝다보니 여전히 7000만~8000만원을 선뜻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는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출시 전 불거진 창문 떨림 현상부터 제어장치 소프트웨어 설계 오류로 인한 주행 중 동력 상실(시동 꺼짐), 결로 현상 등 연이어 터진 품질논란과 리콜 실시 역시 EV9이 부진하는데 크게 한몫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기아는 지난해 연말 파격 할인으로 재고 처리에 나섰다. 6개월 이상 재고 물량이 쌓여가기 시작한 EV9을 처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진행한 것이다. 이에 특정 기간에 차량을 구매하면 1000만원 이상의 할인을, 보조금까지 포함할 경우 최대 2000만원 이상의 할인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찍이 EV9을 구매했던 소비자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본의 아니게 수천만 원을 더 지불하고 EV9을 구매한 것은 물론, 중고차시장에서 벌어진 가격 역전 현상으로 인해 중고차로의 처분도 어려운 실정 탓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내 전기차시장의 경우 과도기인데다 EV9은 사실상 기아의 새 플래그십 모델인만큼 판매량보다는 EV9이 상징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며 "판매량을 올려 매출을 올리면 더욱 좋겠지만, 그 보다는 브랜드가 전동화 전환에 있어서 기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헤일로카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기아가 불가피하게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폭탄 할인을 진행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겠지만, 기아의 전동화 플래그십이 주는 가치가 훼손됐음에는 분명하다"며 "더욱이 제 값을 주고 산 사람만 바보가 된 격인데, 이런 문제가 또 다른 전동화 모델들에서 반복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기아는 EV9의 판매실적이 자신들의 기대치를 밑돌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전동화 전략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역시 국내 전기차시장이 과도기인데다 EV9이 기아의 전동화 플래그십 모델이기에 판매량 보다는 의미에 조금 더 중점을 둬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기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최고 가격대지만 미국·유럽에서는 중상급 정도다"라며 "국내 판매량이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EV 라인업에서 EV9이 갖는 의미는 크다"며 "EV9에 적용된 최고 수준의 사양들은 향후 기아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임에는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북미 올해의 차 수상을 할 정도로 EV9의 대한 반응이 좋다"며 "EV9은 외산 모델에 대한 젊은 수요층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미흡하지만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고, 최근 북미 올해의 차 수상은 EV9이 최고의 SUV임과 동시에 전기차 표준으로서 인정받은 성과이기에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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