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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의 천연지능] (3) 유연한 우연

 

지윤정 | toptmr@hanmail.net | 2024.02.14 17:14:41

[프라임경제] 챗GPT시대 컨택센터휴먼상담의 역할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고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컨택센터 구성원들에게 제언하는 12가지 주제를 1년간 고정 칼럼으로 게재한다.

ⓒ 윌토피아

얼마 전 미용실에 갔다. 정성스레 머리를 감겨준 미용실 보조직원이 "더 헹구고 싶은데 있으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너무 시원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시면 선행 베풀 기회를 하나 드릴까요?" 라며 웃음 짓는다. "나가시면서 프론트 옆 친절사원 게시판 제 이름 란에 스티커 하나 붙여주시겠어요? 제게 선행을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유쾌하게 보조직원의 명찰을 눈 여겨 보았고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갈 때 스티커를 붙였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마음에 뿌듯하고 흐뭇했다.

서비스가 자동화되면서 고객은 기계로부터 기계적 서비스를 받는게 일상이 되었다. 불편하지는 않은데 특별한 감흥은 없다. 불만은 없지만 만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관계만 있을 뿐이다. 언제든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한 곳이 나타나면 떠날 태세다. 

아무리 인간적인 목소리로 안내메세지를 녹음해도 기계라는 것을 빤히 안다. 자동화 서비스에는 정성이 결핍되었고 교감이 희귀해졌다.이 지점이 인간의 역할이 들어설 영역이다. 

인공지능에 대비되는 천연지능을 가진 인간은 유연성 있게 우연을 만들 수 있다. 어떤 고객에게는 농담으로 어떤 고객에게는 조언으로 어떤 고객에게는 부탁으로 즉흥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상담사의 직관으로 고객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적 교감을 경험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휴먼 상담사는 각별히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용기다. 시키는 대로 하고 하던 대로 하면 안전하고 편하다. 깊이 생각을 안해도 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유연한 우연을 만들려면 정해진 지침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시도해야 한다. 매뉴얼에 없지만 직관을 발휘하여 느낌대로 하는 것이다. 고객 이용 현황을 보고 더 저렴한 요금제를 제안하거나, 함께 구매하면 좋은 상품을 추천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고객이 기꺼이 수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큰둥한 반응부터 모멸찬 거절까지 다양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이 생기고 관계가 쌓인다.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감성을 나눌 수 있다

둘째, 반추다. 조심스럽지만 계속 하면서 그 속에서 배워야 한다. 조심(操心)이라는 한자는 손으로 나무 위 새를 잡으려고 다가가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두 손으로 새를 쥐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고객에게 다가간 후 거기에서 반추해야 한다. 

어떤 대화 끝에 되는지, 어떤 타이밍이 적절한지, 고객 성향별로 어떻게 제안해야 거부감을 낮출지, 고객 반응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는 게 자연스러울지 시도하며 배운다. 자전거 타기처럼 터득하는 것이고 수영하기처럼 체득되는 것이다. 머리로 구상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자동응답기 대신 상담사가 응대합니다" 라는 문구가 광고가 되는 세상이다. 뻔한 답을 하는 챗봇과 자동응답기 때문에 씨름을 하느라 지친 고객들에게 사람이 상담해 주는것만으로도 서비스가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이 자동응답기 못지 않게 기계적이면 더 화가 난다.애써 사람을 찾았건만 기계와 다를 바 없을 때 배신감마저 들끓는다. 

휴먼상담사가 대응하는 컨택센터는 인공지능 자동화 응답보다 고비용인데다 운영 리스크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먼상담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함과 우연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휴먼상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안에는 두 개의 '키'가 있어야 한다. 고객의 마음문을 여는 열쇠의 '키'와 고객에게 방향을 알리는 배를 조종하는 '키', 휴먼 상담은 이 두 개의 키를 갖고 탐험하는 일이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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