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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의 천연지능] (4) 반응 말고 감응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 toptmr@hanmail.net | | 2024.03.13 13:53:35
[프라임경제] 챗 GPT시대 컨택센터 휴먼상담의 역할은 어떻게 재구성돼야 하고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컨택센터 구성원들에게 제언하는 12가지 주제를 1년간 고정 칼럼으로 게재한다.

ⓒ 윌토피아


필자는 대학을 졸업한 후 첫 근무처가 콜센터였다. 여기서 첫 업무는 바로 고객상담. 그래서인지 고객의 말을 잘 듣고 핵심을 파악하며 키워드를 메모하는 것에 극도로 훈련됐다.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고객을 만나다 보니 점점 더 후천적으로 개발된 측면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면 자동적으로 키워드가 들린다. 무의식적으로 "00이라는 말씀이시죠?"가 튀어 올라와 일부러 참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매월 참여하는 CEO 조찬회에서 강연을 들을 때 옆자리에 앉은 대표들은 내게 전직이 기자였냐고 묻는다. 테블릿PC 키보드에 빠르게 강연내용을 타자치는 모습이 꼭 기자 같단다. 전직이 기자가 아니라 콜센터 상담사였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콜센터는 예쁜 목소리보다 잘 듣기가 핵심이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들어야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듣는 것에도 레벨이 있다. 고객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것이 기초 레벨이라면 짧은 시간에 핵심을 파악하고 명확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전문 레벨이다. 

하지만 이제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 인공지능과 차별화된 인간지능은 그 이상을 해야 한다. 바로 감응이다. 감응하는 능력이 듣기의 심화레벨이다. 주어진 상황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고객상황을 상상하고 맥락을 반영해 선택적으로 대응하는 감응 말이다. 

반응은 고객이 한 말을 기반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면, 감응은 고객의 내적 마음과 연결돼 고객이 미처 말하지 않은 것까지 헤아려 돕는 것이다. 반응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인데 반해 감응은 현재 지금 이 고객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감응력을 개발 중이다. 단어 하나에 꽂혀서 전체를 놓치지 않고 통합적이고 통찰적으로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감응력은 상담경력이 오래되었다고 자동적으로 개발되는게 아니다. 의식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감응력에 대한 인식을 갖고 감응력을 의도적으로 발휘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응하려면 진정한 관심과 느긋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컨택센터에서 이게 가능할까? 전광판에 숫자가 깜빡이고 수퍼바이저가 종종 걸음을 걷는 컨택센터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상적인 헛소리가 아닐까? 아니다. 전광판도 이제 바뀌고 있고 수퍼바이저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많이 빨리 받고 싶어도 콜이 점점 줄어서 할 일이 없어질 날이 오고 있다. 기술이 흘러오는게 아니라 앞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휴먼상담센터는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인간지능은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인공지능과 다르다. 전광판을 없애고 수퍼바이저를 심리상담가로 배정해도 상담사 마음 안에 조급함과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진정한 관심과 느긋한 여유를 갖는 것은 전광판을 없애서 될 일이 아니라 상담사가 고객과의 관계와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해야 될 일이다.

이제 기술조차 미처 해결하지 못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휴먼상담사에게 맡겨질 것이다. 이런 상담은 짧게 빠르게 많이 처리하는게 핵심이 아니다. 제대로 재콜이 없도록 재발하지 않게 상담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객이 말하는 영역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영역까지 헤아려야 하고 앞뒤 전후 맥락을 살펴야 한다. 고객이 겪는 감정만이 아니라 고객이 믿고 있는 신념까지 통합해 들어야 하고 고객이 붙들고 있는 가정과 말 이면의 의도까지 읽어내야 한다. 

실재하는 것을 볼 때는 눈을 부릅떠야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때는 눈을 감아야 할지 모른다. 이제 감응하기 위해 느슨하게 이완돼 고객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연습을 하기 위해 눈을 한번 감아보자.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키워드를 찾으려 하기 보다 전반적인 느낌과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자.

정보적 듣기를 뛰어 넘어 심층적이고 확장적으로 들어보자. 기존의 듣기 습관을 뛰어넘어야 한다. 요즘 필자는 그간 몸에 박힌 메모 습관을 의식적으로 내려놓고 있다. 메모 대신 모호하고 불분명하지만 감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상대와 주파수를 맞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하며 귀 기울이고 있다. 30년 전 고객 말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섰던 때 못지 않게 생경하고 미숙하지만 이렇게 또 우리는 성숙해 가는 것이리라.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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