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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외신도 눈감은 일본 역사왜곡…한국 언론이 깨웠다

 

남연서 기자 | ysnam@newsprime.co.kr | 2024.04.12 10:24:14

[프라임경제] 한국 언론은 일부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무능할까? 기자는 작은 공이라도 쏘아 올려야 할 것 같았던 간절한 순간에 한국 언론의 힘을 빌린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변화를 체험했다. 그래서 한국 언론의 힘과 잠재력을 믿는다.

이유는 뭘까. 시간을 2022년 9월로 돌려보자. 당시 기자는 Harvard Business Publishing (Harvard Business Review의 모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다. 회사 자체가 하버드 소속이어서 하버드대학교의 직원으로 분리돼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버드경영대학원이 사용하는 교과서를 공짜로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이 권한, 장점이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 관련 교과서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 고향에 대한 향수로 한국 교재를 찾았다. 눈에 들어온 게 'Korea'라는 교재다.

그런데 교재 첫 번째 문단에서 큰 충격과 배신감을 받았다. 트라우마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화를 통해 큰 발전을 거두었다는 얘기다. 더해 일본은 이미 강제 징용에 대해 65년에 이루어진 조약 체결로 사과했으나 한국이 계속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위안부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용된 지도에는 대한민국의 동해를 ‘일본의 해’로 표기돼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다는 표현도 ‘합병’이라는 말로 미화됐다. 교재 집필 시기는 2015년이다. 7년간 이런 왜곡된 역사를 배웠을 수많은 인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했다. 어떻게든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어떻게 편협된 미화가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재에 실리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집필자 중에 한국인이 한명도 없는데, 일본인 집필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 집필자는 Harvard Business Review에 몇 차례 기고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운영하는 여러 개의 리서치 센터 중 일본에 위치한 '재펜 리서치 센터' 소속이기도 했다.

기자는 집필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왜곡 사실을 수정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런데 답은 없었다. 그래서 언론을 생각했다. 미국 현지 언론인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에도 제보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소식은 없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다. 들쑤셔서 좋을게 없다는 반응이다. 

답답한 마음에 국내로 손을 돌렸다. 그때 기자의 말을 들어준게 JTBC다. 친일 역사 왜곡 내용은 JTBC의 프라임타임 8시 뉴스 헤드라인으로 방송됐다.

여기서 기자는 익명으로 ’하버드대 직원‘으로서 인터뷰했다. JTBC 방송 후 MBC와 KBS도 관련된 방송을 이어갔다. 반갑게도 반응은 뜨거웠다. 각종 시민단체와 연구소를 비롯해 하버드행정대학원 한인 학생회까지 나서서 교재의 대표 집필진에게 관련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교재의 내용이 수정됐다는 연락이다. 기자는 다시 한번 JTBC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JTBC는 교재 수정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한-일 관계를 대결에서 협력으로 수정한다는 윤 정권의 노력이 조명되고 있던 때였다.

대한민국은 60년대 이후 급성장했지만 둘러싼 나라에 비하면 약소국으로 치부된다. 하버드 램지어 교수 사건에서도 미뤄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교육을 통한 로비가 만만치 않다. 중국 또한 Confucius Society 같은 친중을 가르치는 유교학원을 많이 설립했다. 아이비리그 8개 대학 뿐 아니라 미국에 존재하는 많은 대학에 중국은 매년 막대한 돈을 기부한다.

하버드대학 및 아이비리그를 학생과 직원으로 경험했던 기자는 한국의 약함을 자주 그리고 깊게 느꼈다. 나치 정권의 악행에 대해서는 있어서는 안 될 씻지 못할 과거라고 미국과 유럽은 말한다. 

그런데 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잔인함은 ‘논란’이라고 치부하는 것인지, 답답하고 억울할 때도 많았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서 왜곡된 역사를 사실이라고 말하는 일본 학생의 관점과 나의 관점을 둘 다 존중해야 한다는 하버드 교수들의 발언은 더욱 가슴 아팠다. 수업 후 억울한 마음에 눈물 흘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교재 전면 수정은 이런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정이 안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기자는 대한민국 언론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의 힘을 빌려 형성된 여론이 잘못을 바로 잡아서다.

언론 역시 100%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자는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실감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모든 것을 떠나 기자를 선택한 이유이고, 언론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자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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