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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집이 아니라 감옥" 전세사기 고통

남은 동아줄 '전세사기 특별법'…국회는 마이동풍

배예진 기자 | byj2@newsprime.co.kr | 2024.04.26 14:02:49
[프라임경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지 약 1년이 지났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상흔은 치유되지 않고 여전하다. 남의 이야기 같던 전세사기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로 더 넓게 번져나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은 매주 400~500건씩 새로 들어온다. 5월31일까지 피해자가 3만6000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까지 국토부가 인정한 피해 건수는 1만5433건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집계되지 않은 피해자는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기자가 전세사기 최대 피해지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 소재의 주민센터에 방문했을 때, 민원인 중 절반은 피해자 구제 신청자였다.

주민센터에서 만난 A씨는 "피해자임을 직접 증명하는 게 맞나 싶다"며 "필요한 서류도 많고, 시간도 맞춰서 와야 하고, 연차 쓰기도 이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파산하는 게 여러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미안해서 연락을 안 받았어"

화곡동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연락두절된 집주인을 직접 찾아가 들었던 말이다. 보증금을 모두 잃게 생긴 피해자들은 목 끝까지 울분이 차올랐다고 한다. 그들의 보증금은 대부분 은행 대출이었다. 하루아침에 1억원 이상의 빚이 생겼다.

집주인은 피해자들의 암담한 심정은 안중에도 없다. 되레 자신도 정권의 피해자라는 식이다. 정부의 주택정책을 비판하며 피해자들을 기만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사회초년생이라는 점이다. 험난한 취업 시장 속에서 자신의 책상 자리를 겨우 만들었는데, 누울 자리마저도 빼앗겼다.

피해자 김씨는 "내일 첫 출근인데 벌써 막막하다"며 "겨우 직장 구하고 열심히 노력한 거밖에 없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사기 때문에 연인과 헤어졌다"며 "자연스레 결혼은 이제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암울한 심정을 전했다.

전세사기는 사회초년생들에게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앗아간다. 집은 물론이거니와 결혼 자금, 내집마련 자금, 창창할 미래도 빼앗아 갔다.

피해자 최씨는 "앞선 피해자분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며 "퇴근하고 오면 집이 아니라 감옥에 들어가는 기분이다"라고 호소했다. 

결국 개인회생을 고려하는 피해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29세 이하 청년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3278건으로 전년보다 45.3% 증가했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회초년생이 늘어난 상황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인회생 상담을 받은 피해자 이씨는 "집주인과 부동산을 대상으로 법정 싸움을 해도 얻어낼 보증금이 적다. 차라리 그동안 개인회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나긴 법정 싸움에서 이겨도 완전한 구제는 어불성설이다. 보증금의 10%만이라도 건지기 위한 사투다. 마지못해 고소장과 진술서를 작성하는 이유다.

그나마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전세사기 특별법'은 실효성이 없이 썩어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매듭짓지 못하고 22대로 넘어가면서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계속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의 골자인 '선구제 후회수'의 지원금 규모를 두고 현재 여야간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 보증금 회수 방안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당기순손실이 3조8598억원에 이를 정도로 악화됐다. 심지어 올해 1분기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은 전년 대비 80% 증가(1조4354억원)했다.

남아있는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21대 국회는 5월29일 마감 기한 안에 매듭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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