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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내리고 대출은 막고" 엇박자 금융정책에 은행·실수요자 '혼란'

규제 강화로 대출 길 막힌 실수요자…은행 직원도 업무 스트레스 호소

박대연 기자 | pdy@newsprime.co.kr | 2025.03.27 17:24:24

금융당국의 일관성 없는 가계 대출 정책에 실수요자와 은행 직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하면서도 대출 규제는 강화하는 상충된 정책을 펼쳐 은행과 실수요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금융당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현장에선 소비자의 피해와 은행 직원들의 업무 과부하가 속출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36조7519억원이다. 전월 대비 3조931억원 증가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583조3607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3836억원 늘었다.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가계 대출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의 부동산 시장 과열이 꼽힌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잠실, 삼성, 대치, 청담동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이하 토허제)에서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집값이 폭증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19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강남3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를 다시 토허제로 지정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뚜렷해지자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에 지역별 대출 점검 강화와 다주택자·갭투자(전세 낀 주택매입)에 대한 자율규제 도입을 주문했다.

하나은행은 오늘부터 다주택자의 서울 주택 구매 목적 주담대를 신규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은행도 오는 28일부터 유주택자들의 강남·서초·송파·용산 소재 주택 구매 목적 신규 주담대를 중단한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1일 수도권 유주택자 대출 제한을 해제한 바 있다.

지난 1월2일 조건부 전세대출을 재개했던 NH농협은행도 지난 21일부터 서울 지역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한 상태다. KB국민·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다주택자 신규 주담대와 조건부 전세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이번 규제 강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실수요자들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던 매수자들은 거래 자체가 막혀버렸고, 기존 주택을 팔아 이사를 가려던 실수요자들도 잔금을 치르지 못해 발이 묶이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신혼집을 마련하려던 직장인 이모씨(34)는 "금리가 낮아져 대출을 받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마다 상담 결과가 달라지고 있다"며 "주담대 조건이 계속 바뀌니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첫 집 마련을 준비하던 박모씨(32)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다주택자가 아니어도 대출 규제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다"며 "매번 은행을 찾을 때마다 대출 조건이 바뀌어 집을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은행 직원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한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정책이 자주 바뀌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고객들에게 정확한 안내가 어렵고, 그로 인해 항의성 민원이 폭주해 업무 부담이 상당히 커졌다"며 "창구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업무를 피하려는 분위기마저 생기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정책 혼선이라는 지적에 대해 지난 26일에 열린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은행들의 자율적 심사를 통해 투기적 수요를 차단하고 실수요자에게 우선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지분형 주택금융'에 대해서는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현금이 부족한 이들의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기조가 실수요자 보호라는 본래 목적과 달리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정부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를 연기하면서 대출과 매입 수요를 급증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추가 규제 가능성을 남겨두면서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금융당국의 정책이 가계부채가 증가할 때는 급히 조이고, 감소하면 다시 풀어주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런 방식보다는 내수경기 침체와 가계대출 부실 방지에 초점을 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나친 규제로 실수요자가 대출을 받지 못하면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몰려 금융시장 전체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규제가 실수요자 보호와 시장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잦은 규제 변경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 실수요자들이 대출이나 주거 계획을 세우는 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일관성 있는 정책 기조가 없다면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는 본래의 취지가 오히려 퇴색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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