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만 125%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는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하면서 관세 전쟁의 국면이 급변하고 있다. 단기적 부담은 피했지만 철강·자동차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정부의 외교력과 협상 전략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 13시간 만의 급선회…중국만 125% 관세 폭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새벽 0시1분부터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효한 지 13시간 만에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는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이 기간 동안 10%의 기본 관세만 적용하겠다" 밝혔다.
다만 중국의 관세율은 125%로 다시 한번 상향했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중국이 세계 시장에 보여준 무례한 태도를 근거로, 저는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즉시 125%로 인상한다"며 "언젠가는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약탈하는 일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고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관세 인상은 중국이 전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올리며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한 데 대한 재보복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닐 유입을 명목으로 중국에 두차례 10% 관세를 부과했고, 상호관세 성격으로 34% 관세를 추가했다.
중국이 보복관세를 예고하자, 50%를 더 추가해 도합 104% 관세가 이날부터 적용됐다. 이후 중국이 물러서지 않고 추가 보복 관세를 발표하자, 다시금 재보복성 관세를 물려 총 125% 관세를 적용한 것이다.
◆ 한국, 숨 고르기 돌입…협상 여지 확보
한국은 당초 25%의 상호관세 적용 대상이었지만 이번 유예 조치에 따라 10%로 하향 조정되면서 일정 부분 숨을 돌리게 됐다. 정부는 이를 협상의 여지를 확보한 '전략적 정지'로 해석하고 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DC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출 여건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우려됐으나, 유예 조치로 시간을 벌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중국에 대한 125% 관세 조치로 인해 우리 기업의 대중 수출과 제3국 경합에 따른 간접 피해 우려도 남아 있다"며 신속한 대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이날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비롯해 상무부 고위 인사들과 회동을 갖고, 한국의 입장을 적극 전달했다. 특히 상호관세 외에도 철강·자동차 등 기존 고율 관세 품목에 대해 "우리 산업에 큰 부담이 되는 만큼 조속한 철폐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코스피가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 격화에 전날 상승분을 반납하며 2400선에서 하락 출발한 11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풍선효과·디커플링 압박…산업계 리스크 여전
문제는 관세 유예로 인한 '시간 벌기'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중국과의 관세 충돌로 미국 수출이 막힌 중국산 제품이 한국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고, 대중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선에서 중국만을 정조준하고, 나머지 국가와의 ‘공동 전선’을 구축하려는 기조를 보이면서, 한국은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실제로 미국은 "보복하지 않은 나라엔 보상하겠다"며 협상 참여 유도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협상 국면이 단판이 아닌 '마라톤 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 본부장은 "미국과의 협상은 지속적인 설득과 민관 협력이 어우러져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6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본격적인 협상은 7월 이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은 정치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속도전을 펼칠 가능성이 커, 실무 협상력 제고가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정부, 9조원 정책자금 투입…수출 기반 방어 '총력전'
이처럼 관세 유예에도 불구하고 대외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정부는 수출 현장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 대책을 발표하며 총력 대응에 나섰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는 긍정적 조치지만, 여전히 기본관세와 철강·자동차 품목별 관세는 유효한 상황"이라며 "총 9조원 규모의 수출입은행 정책자금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직접적인 관세 피해를 보는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수출 대기업과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전방위 금융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위기대응 특별프로그램 3조원(중소·중견) △수출 대기업 지원 2조원 △협력업체 상생자금 3조원 △수출 다변화 금융프로그램 1조원 등으로 구성된다.
아울러 정부는 관세행정 지원도 병행할 방침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품목별로 수시로 변경되는 가운데, 수출기업들이 관세 분류와 신고 과정에서 겪는 혼란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는 향후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의 전개 방향에 따라 추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90일 유예 기간 내에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재정적 대응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