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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칼럼] 혁신이 막힌 한국 경제

 

이다연 동반성장연구소 이사 | press@newsprime.co.kr | 2025.02.13 10:59:09
[프라임경제] 1998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IMF 외환 위기 이후 어느덧 3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에도 대한민국의 재계 순위에는 큰 변화가 없다. 1998년 당시 30대 그룹 순위를 살펴보면 1위 현대, 2위 삼성, 3위 대우, 4위 LG, 5위 SK, 6위 한진, 7위 쌍용, 8위 한화, 9위 금호, 10위 동아, 11위 롯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 중 2024년에 그 자리에서 내려온 그룹은 해체한 대우, 쌍용, 동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10위 내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을 보면 다르다. 한국과는 달리 크고 작은 변동이 많았다. 1998년 미국 1위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였으며, 그 뒤를 제네럴 일렉트로닉 (GE), 인텔, 월마트, 엑손 모빌, 코카콜라, IBM, Merck, 화이자, 시스코 시스템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2024년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3위로 내려앉았으며, 애플이 1위, 엔비디아가 2위, 알파벳이 4위, 그리고 그 뒤로 아마존, 메타, 테슬라, 브로드컴, 버크셔 해서웨이, 그리고 일라이 릴리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즉, 90년대와는 대부분 다른 계열의 기업들이 미국의 경제를 선두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대한민국 기업 순위와 변화무쌍한 미국 기업 순위를 보면 하나의 궁금증이 일어날 것이다. 두 나라의 차이는 왜 일어난 것일까? 미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람보다 월등하게 똑똑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를 호령하는 인재 중에 적지 않은 수가 한국인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차이를 문화적 요인, 가치인정, 그리고 제도적 차이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첫 번째로는 문화적 요인이다. 대한민국은 남들과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대체적으로 펼쳐져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성공은 대부분 공부를 잘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한 뒤 대기업으로 취업하거나 전문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문화적 요소인 안정 지향적 문화와 일맥상통한다. 흔히 추석 등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학벌, 직업 등으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명문대에 진학했거나 전문직 등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칭송받지만, 창업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안정된 직장이 중요하다며 핀잔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창업에 필요한 요소인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모험, 도전 정신과는 상충하는 것이다.

가치인정에 대한 차이 또한 대한민국과 미국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미국에서는 창업 후 매각이 자주 일어나며, 그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한 예시로, 일론 머스크 현 테슬라 사장이 이끌던 페이팔은 약 15억 달러로 매각되었다.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가격은 미국의 경제 규모가 대한민국의 약 29배 정도인 것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성공에 대한 과실에 정당한 값어치를 매기는 미국 매입자의 사고방식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성공적인 스타트업 엑시트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탈취 및 비슷한 사례를 모방하여 시장에 내놓는 등 스타트업을 장려하기는커녕 더 자라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례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즉, 창업자들은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만들어 엑시트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대기업에 탈취되거나 모방하는 것을 더 걱정하게 되는 지경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스타트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창업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10곳 중 무려 6곳이 규제로 인한 사업활동 제약이나 경영상 어려움 등을 겪었다고 한다. 특히 투자 재원 축소 및 행정 처리 기간이 너무 길고 진입규제의 장벽이 너무 높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는 기업이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세금 감면, IP 보호 강화, R&D 투자 등에 힘을 쏟고 규제를 완화해 주는 미국의 사례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스타트업 강국을 만들기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규제 완화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 규제 완화 및 인식의 전환 이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하지만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노력이다. 스타트업의 천국 미국에서도 스타트업의 성공률은 1% 미만이고, 대한민국에서도 신생기업의 1년 생존율은 64%, 5년 생존률은 34%에 불과하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앞으로 치고 나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창업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 보호뿐만 아니라 경영관리, 지식재산권, 인사, 회계, 영업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독하게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나무가 달콤한 과실을 맺으려면 질 좋은 땅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들에 비하여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창업자가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방향 전환을 이루어 시장에 알맞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응용법으로 새롭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점은 대한민국의 문화적 요인, 가치인정, 그리고 제도 문제에 가로막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 및 정부의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땅만으로는 과실이 자라지 않는다. 창업자들 또한 시장에 발맞추고 자신의 권익을 확실히 보호하며, 필요한 지식을 쌓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다연 (사)동반성장연구소 이사 / (주)더블유시즌 대표이사 /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 농업경제학 전공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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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2025/02/17 11:40:24)

찬성 0  반대 0 

겉만 요란한 미국베끼기식 스타트업 문화 도입만이 능사가 아님을 잘 짚어주는 글 같습니다.

대한민국만의 색이 뚜렷한 성공적인 창업의 전성기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