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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노래] 유심초 – 사랑이여 ①

 

이상철 제이민그룹 회장 | Press@newsprime.co.kr | 2025.03.19 13:45:41

[프라임경제] 이 노래는 많은 인터넷 검색창들에서 그 사연들을 볼 수 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버스 여차장과 부유한 집 소아마비 청년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다.

홍씨 성을 가진 18세의 여인이 1978년에 경북 상주에서 올라와 버스차장으로 취업을 했다. 부모는 돌아가시고 고향엔 오빠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버스차장으로 1년여를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K대학 국문과 3학년생이던 안씨 성을 가진 대학생은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로 한 쪽다리가 불편했다. 2학년 때까지는 아버지가 출근 길에 등교를 시켜주었으나 3학년이 되자 그 청년은 고집을 부려 혼자 등하교를 하게 됐다.

그러나 출근·등교시간에 붐비는 버스를 타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차장은 그 대학생이 버스에 오르는 걸 도와주고 자리까지 마련해 주며 보살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씩 흘러 대학생의 졸업이 다가왔다. 이 때부터 이들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고, 매일 빈 시간들을 찾아 만남을 이어갔다.

사랑의 감정은 갈수록 커갔고, 드디어 결혼 결심을 한 남자는 부모님께 아가씨를 소개했다. 아들의 제안에 기쁨 반, 우려 반이었던 아들의 부모는 이 아가씨를 보자마자 그야말로 격노했다. 

나름 넓다른 정원까지 두고 부유하게 살던 이 집 부모는 아무리 아들이 장애인이어도 촌티 풀풀나는 이 아가씨를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를 내쫓기듯 도망나온 그 처자는 곧장 버스회사로 가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택연금을 당한 이 남자는 바로 여인을 찾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달후 대학생은 버스회사를 찾아가 홍씨를 찾았다. 그러나 이미 두 달전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고향 주소를 받아 시외버스를 탔다.

터덜터덜한 신작로 길을 지나 다섯 시간만에 그녀의 고향 상주에 도착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녀의 오빠가 싸리문을 들어섰다. 홍씨 아가씨를 찾는다는 그의 물음에 대답이 없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턱으로 앞산 쪽을 가르켰다. 

"저기 묻혀있으니 가볼테면 가봐"

이 말만 남긴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수포로 끝나자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을 것이다. 하룻밤을 그 무덤에서 통곡을 한 그 남자는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왔다.

날 밤을 새우고 눈물이 범벅이 된 게 무릇 셀 수가 없을 만큼...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죄책감에 휩싸인 이 남자는 며칠 뒤 친구를 만나 편지 한 장을 전해주고 약을 준비해서 다시 상주 그녀의 고향으로 향했다. 

그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다름 아닌 그녀의 무덤 옆. 

친구에게 전해준 편지에 한 편의 시가 있었다 그 시 제목이 '사랑이여' 그 전문이다.

이 시는 결국 유심초를 통해 노래가 됐다. 듀엣으로 1975년부터 노래하기 시작한  유시형·유의형 형제가 1980년에 만들어 1981년에 세상에 내놨다.

이 곡은 그 해 MBC 10대가수 남자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포크듀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놨다. 

인터넷상엔 이 곡의 작곡자와 작사자가 최홍식이란 분으로 나오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이 모든 내용이 짜여진 것은 아니란 확신이다.

이상철 제이민그룹 회장/ 칼럼니스트·시인·대지문학동인/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회장(前)/국회 환노위 정책자문위원/ 국회의원 보좌관(대구)/ 쌍용그룹 홍보실 등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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