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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노래] - 이동원 귀천 ②

 

이상철 제이민그룹 회장 | press@newsprime.co.kr | 2025.04.02 13:12:46
 [프라임경제] 천상병의 시 '귀천'은 2022년에 작고한 음유시인 이동원에 의해 1984년에 노래가 됐다.

천상병은 그의 많은 시중에 귀천으로 유명해다. 한 번도 밤무대에서 노래한 적이 없이, 마치 학인양 예술인으로 지조를 지켰던 이동원도 이 노래와 정지용 시인의 향수로 제대로 된 가수반열에 올랐다

이 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이 세상을 소풍으로 비유하며 감사할 줄 아는 태도는 어린아이처럼 맑고 흔들림 없는 믿음에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강화도에서 1968년 봄에 작성됐다.

천상병이 서슬이 시퍼렇던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고 나오자, 고향 후배인 시인 박재삼이 인천에서 뱃길을 따라 강화도로 위로 여행을 함께 했다.

간 곳은 간평포구. 어느 횟집에서 모둠회 한 접시를 시켜놓고 기다릴 때 천 시인이 누런 휴지에 긁적여 박 시인에게 줬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게 '귀천'이다.

2017년 이상목 강화군수가 이 얘기를 듣고 간평포구에 귀천시비를 세우고 귀천 공원으로 명명했다. 천 시인은 중학교 시절인 1945년 '공상'이란 시가 잡지 죽순 11집에 실리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때 담임교사가 깃발 詩를 쓴 유치환 선생이었다.

천상병은 1967년 6월25일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동베를린 사건, 즉 동백림사건과 연루됐다는데, 천 시인은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며 마산중학교 2학년에 입학한 이후 독일은커녕 외국을 나가 본 적이 없다. 천 시인이 기소된 사연을 보자.

그는 1950년 6.25가 터지자, 부산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6개월간 미군 통역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1951년 부산에서 서울대학교 경제과에 입학해 1954년 중퇴했다. 1964년 2년간 부산시장 김현옥의 공보실장을 한 게 돈을 번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든 지인이든 보는 사람마다 500원만을 입에 달고 다녔다. 지금으로 보면 1만원정도 아니었을까. 그렇게 막걸릿값을 주던 친구 강빈구는 서독 유학 중이었다. 이 친구가 실제 동베를린에 대해 주절거린 내용을 고발하지 않았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말더듬이가 심해 조사받다 나왔다. 이후 대외적으로 조사 내용을 제대로 얘기해 줄 천 시인이 필요했던 중앙정보부는 천상병에게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고문을 자행했다.

결국 얻어낸 것이 없었다. 선고유예로 풀려났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체중이 40kg이 빠졌다. 성기능도 잃었다. 치아도 대부분 빠져 합죽이가 되었고, 말도 더듬었다. 정신적으로도 정상일 수 없었다.

한쪽 다리를 절어 얼굴 모양이 옛날 코미디언 김희갑의 얼굴과 비슷해졌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천희갑이었다. 뜻밖에도 강빈구란 친구는 별 탈 없이 풀려났는데 그가 말을 더듬어 간첩으로 엮는 데 실패한 탓이었다. 결국 2013년에 이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무죄가 확정됐다.

고문 후유증으로 친구 집에서 치료 중에 친구 목순복의 여동생 목순옥과 1972년에 결혼한 천 시인은 친구 강태열이 빌려준 300만원으로 1985년 서울 종로 인사동에 귀천이란 찻집을 개업했다. 말이 찻집이지 천 시인과 친구들의 막걸릿집이었다. 매일 마신 술 탓에 간경변을 일으켜 1993년 봄에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천상의 시인이 됐다.

동시대 시인이었던 신경림에 의하면 그는 천재에 가까웠다. 어느 날 신경림 시인이 총 10권으로 된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었다. 천 시인은 "뭐하다 이제사 그걸 읽고 있냐?"며 그 내용을 줄줄 얘기하더란 에피소드도 있다. 그 외 모든 문예에 박식했다는 후문이다.

귀천 찻집은 파주 출판단지 근방으로 옮겨 천 시인의 외조카가 귀천 찻집을 운영 중인데, 그의 많은 유품이 거기에 전시돼 있다. 은평구에는 괴짜 시인 △천상병 △이외수 △중광스님이 만든 '셋이서 문학관'이 은평구(區)의 문화 재산으로 보존되어 있고, 의정부시에서는 매년 천상병 예술제를 열고 있다.

천 시인의 집이 재개발로 없어질 국면에 그를 존경하던 충남 태안군의 지역 예술가가 그 집을 사들여 충남 당진에 복원했다.

목순옥 여사는 천 시인이 죽자, 그해 8월에 그의 글들을 모아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와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천 시인의 일대기는 KBS가 1994년에 귀천이란 제목의 드라마를 만들었고 연극도 수편이 무대에 올랐다.

천 시인은 하늘로 돌아갔다. 노을빛 함께 단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할 때. 암혹한 시절을 보낸 천재 시인을 한 번쯤 돌아봄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상철 제이민그룹 회장/ 칼럼니스트·시인·대지문학동인/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회장(前)/국회 환노위 정책자문위원/ 국회의원 보좌관(대구)/ 쌍용그룹 홍보실 등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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