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1호'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인가를 준비중인 한국투자증권이 큰 암초에 부딪혔다. 최근 5년간 총 매출액 보다 약 6조원을 더 부풀려 공시한 부정행위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적발해 회계심사에 착수해서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증권업계 실적 1위임에도 금융당국이 추진중인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도 아쉽다는 평가다. 여기에 내부통제에 대한 잡음까지 나오면서 '3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는 '혁신가' 김성환 대표의 능력에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호실적에도 주주환원 인색…"사회적 책임 필요"
3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 중 밸류업 공시에 나선 회사는 키움증권·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유안타증권·현대차증권·DB금융투자·대신증권 등 7곳이다.
KB증권·메리츠증권·하나증권·우리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BNK투자증권·iM증권 등 6곳은 지주사의 밸류업 공시를 통해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그룹 차원의 밸류업 방향성을 공개했다.
종합금융투자사(종투사) 10곳 중 밸류업 공시를 안 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뿐이다. 다만 삼성증권은 지난해 말 실적 발표 콘퍼런스홀에서 향후 3~5년 내 주주환원율 50% 달성하겠다고 밝히는 등 최근 밸류업 관련 행보를 보였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한 모기업인 한국금융지주는 주주환원책에 인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지주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은 "밸류업은 배당보다 성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주주환원보다 실적성장에 비중을 보였다.
그렇다면 한국금융지주의 주주환원율은 어느 정도일까. 29.7%로 경쟁사 대비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메리츠금융(51.2%), KB금융(38.6%), 신한금융(36.0%) 등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한국금융지주는 연결 기준 매출 21조1741억원, 당기순이익 1조458억원을 기록했다. 주주환원 여력이 있음에도 주주환원 정책이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밸류업 공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주주들의 불만과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대형 증권사로서 사회적 책임 이행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 개인투자자는 "'반드시 최고의 성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던 김 대표의 약속이 자기들끼리 잘 먹고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미였느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투자증권 측은 "밸류업 공시에 대해서 아직 공유된 사실이 없다"고만 짧게 답했다.
◆과대계상으로 금감원 심사…중징계시 IMA 인가 '제동'
한국투자증권은 낮은 주주환원율에 이어 국내 1호 IMA 사업 인가에도 제동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5조7000억원 규모의 회계처리 오류가 발생한 한국투자증권에 대해 회계심사에 착수했다.
지난 1일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부문 부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진행된 '자본시장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일단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회계 심사에는 착수했다"며 "규모 비율이라든가 고의성 등을 살펴보고 감리로 전환할지 고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심사에서 중과실이나 고의가 인정되면 '강제성'이 있는 감리로 전환된다. 감리 조사 결과 한국투자증권의 위반사항이 중대하거나 고의적이라고 판단되면 금감원 제재가 이뤄진다.
이번 심사는 지난달 20일 한국투자증권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치 사업보고서를 정정 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영업수익(매출)은 5조7000억원 깎였고, 영업비용은 5조7000억원 늘었다.
당시 한국투자증권 측은 "외환 및 리테일 부서의 내부 거래를 상계처리하지 않고 매출로 인식하는 회계 처리 오류가 있었다"며 "영업비용도 함께 조정돼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는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가 한국투자증권의 IMA인가 신청에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IMA는 자산관리계좌(CMA)와 유사하게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고 운용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상품이다. 지난 2016년 기업금융 활성화를 취지로 발행어음과 함께 추진됐다. 발행한도가 없어 발행어음보다 대규모 자금 조달에 유리하다.
현재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을 충족하는 증권사만 IMA를 신청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9조3168억원)과 미래에셋증권(9조9124억원)만 해당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경우,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1년 간 진출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검사 결과와 제재 수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동안은 '기관 경고' 이상이 나오면 금융당국에서 신사업 인가를 허가해 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성환의 '360도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구멍난' 내부통제
올해 금융당국은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책무구조도'를 도입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의 대표이사(CEO) 등 임원들의 내부통제 관련 책무를 명확히 해 금융사고시 책임을 묻도록 하는 제도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이달 초 신년사를 통해 "취급하는 상품이 고도화되면서 리스크의 범위는 넓어지고, 그 형태는 복잡해질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360도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를 구축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비리 의혹을 받는 한국투자증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본부장(현 그룹장) 방모 씨와 PF본부 소속 직원 조모 씨 등 8명이 불구속 기소되며 이러한 발언이 무색해졌다.
방 씨와 조 씨는 2021년 2∼7월 한투증권의 부동산 PF 사업 시행사 A사에 대한 사업 초기자금 대출 과정에서 소위 '원뿔원'(원플러스원, 1+1) 조건으로 김씨가 운영하는 무등록 대부업체인 B사의 대여를 중개해 연 100%가 넘는 이자를 수수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한국투자증권은 아직 책무구조도 초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현대차증권·IBK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 8개 사가 금감원에 책무구조도 초안을 제출한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지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만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