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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품발품] 화마 후유증 여전한 구룡마을 "재개발 이견 충돌 진행형"

"우리에게 분양권 달라" VS "임대 아파트가 최선"

선우영 기자 | swy@newsprime.co.kr | 2023.02.01 15:23:30

구룡마을 화재 현장. ⓒ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화마가 할퀴고 간 '서울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만큼 피해는 막심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화재 여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나마 언론을 통해 낙후된 환경이 세간에 알려지자 자연스레 지난 10여년간 계류되던 재개발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발생한 구룡마을 화재는 많은 피해를 안겼다. 순식간에 수십가구를 불태웠으며, 60여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양산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지자체는 인근 호텔에 이재민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한편, 임대 주택 이주를 제시하는 등 나름대로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하지만 이재민들에게 있어 이런 대처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재개발 합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 여파로 그간 지자체와 주민간 입장 차이로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촌 옆 빈민가' 쉽지 않은 피해 보상

부촌 바로 옆에 자리한 '빈민가'. 구룡마을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다. 1980년대 도시 미관을 이유로 생활 터전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구룡산 일대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동네다. 강남에 위치했지만 '서울 마지막 판자촌'이라는 점에서 열악한 주거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방문한 구룡마을은 여전히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 그대로 방치된 상태. 좁디좁은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마주한 화재 현장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땅은 검게 그을렸고, 대부분 살림살이도 새까맣게 타버려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매캐한 냄새도 여전히 가득하다.

구룡마을 화재 현장. ⓒ 프라임경제


곳곳에 널브러진 연탄과 스티로폼, 철근 등도 눈에 띈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살을 파고드는 '맹추위'는 이들 상황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현장 한켠에 설치된 '구룡마을(4지구) 화재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구룡마을 비대위)' 현수막과 텐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재 이재민들로 형성된 조직이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 삼삼오오 모여 작은 난로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앞으로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었다. 

"이곳은 매우 열악한 환경을 간직한 만큼 화재나 수해 등 재난 사고가 빈번하다. 현재 지자체에서 마련한 임시 거처(호텔)에 머물고 있지만, 곧 퇴거(2월2일)해야 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가 '이후 임대 주택 이주를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무작정 반기긴 쉽지 않다. 여기 대부분이 고령층 기초생활 수급자들이다. 아무리 저렴한 임대주택이더라도 금전적 부담은 불가피하다. 이를 고려해 임대 주택이 아닌 다른 방안을 모색해 달라." - 구룡마을 비대위 관계자 A씨 

화재 현장과 강남 아파트의 이질적인 풍경. ⓒ 프라임경제


하지만 이재민 요구처럼 다른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허가 건축물 동네라는 점에서 확실한 책임과 이에 따른 보상을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재 원인은 전기적 요인(합선·누전·과부하 등)"이라며 "합판이나 스티로폼 등 가연성 소재로 지은 가건물이 밀집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즐비한 연탄과 LPG 통, 전선도 리스크를 가중시킨다"라며 "무허가 건축물이기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고, 피해 복구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지자체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가 임대 주택"이라고 덧붙였다. 

◆"임대 아닌 분양권" VS "무허가 건축물, 대상 제외"

"10년째 끊이지 않는 갈등 요인은 '분양권'이다. 주민들이 임대가 아닌 분양을 원하고 있기 때문."

구룡마을은 개발 방식과 보상을 두고 지자체와 주민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 프라임경제


물론 구룡마을 역시 이전부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1년 서울시와 SH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 재개발 의지를 밝히면서 사업 추진 기대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보상과 개발 방식을 두고 주민과 지자체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돌연 도시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그 이후에도 개발 이슈는 이어졌다. 2016년 재차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 2020년 서울시가 실시계획인가를 고시했다. 다만 당시에도 주민과 지자체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현재까지 첫 삽도 떼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는 재개발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임대 주택을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토지보상법상 공공 시행자는 이주 대상자에게 주택 및 이주 정착금을 지원해야 하지만 '무허가 건축물 소유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구룡마을 주민 B씨는 "이곳은 대부분 고령층으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라며 "개발로 이주가 불가피한 주민에게 지원은커녕 오히려 금액을 지불하라는 건 맞지 않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삶의 터전을 장기간 내준 만큼 주민들은 임대 주택이 아닌 적은 평형이라도 정식 분양권을 원한다"라고 덧붙였다. 

구룡마을 일대. ⓒ 프라임경제


하지만 업계 시선은 냉담했다. 주민 입장도 이해되지만, 무허가 건축물에 대한 분양권 지급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화재로 구룡마을 재개발이 재차 주목되고 있다"라며 "다만 주민들의 양보 없인 재개발 추진이 힘들다는 점에서 이번을 계기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구룡마을은 좀처럼 재개발로 인한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이번 화재를 시발점으로 재개발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있는 구룡마을이 과연 어떤 변화의 흐름을 보일 수 있을지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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